계단을 올라 시부야역 밖으로 나오자 휘황찬란한 거리의 불빛과 엄청난 인파가 시야에 들어왔다.
11월도 중순이 지났건만 이마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아카리는 토큐백화점 쪽을 향해 걸었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지만 누가 뭐라 해도 지금 여기서 가장 들뜬 사람은 자기일 것 같았다.
아카리는 토큐백화점 앞에 도착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지도 앱에서 레스토랑 벨라돈나의 위치를 확인한 후 안내에 따라 걸었다.
갑자기 손에 든 스마트폰이 진동하면서 화면에 코헤이의 이름이 표시되었다.
“여보세요? 나 거의 다 왔어.”
아카리는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미안…. 오늘 못 갈 것 같아….”
코헤이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아카리는 걸음을 멈췄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세리자와 선생님한테 급하게 부탁받은 게 있어서 지금 당장 알아봐야 해.”
그 말을 듣자 머리에 열이 확 올랐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아카리는 자신의 기분이 수화기 너머로 그대로 전해질 만큼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지. 아카리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이잖아. 다음에 꼭 제대로 챙겨 줄게. 정말 미안해….”
“벨라돈나는 다음에 가도 되니까 오늘 잠깐이라도 만날 수 없어? 내가 코헤이네 집으로 가서 기다릴게.”
코헤이는 네리마역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서로의 집 열쇠를 하나씩 나눠 가졌기 때문에 집에 사람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었다.
갈아입을 옷은 없지만 내일은 주말이니 편의점에서 속옷만 사면 될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생일을 코헤이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일이 오늘 안에 안 끝날 것 같아. 미안,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
“너무해.”
“어쩔 수 없잖아! 정시에 출퇴근하는 직업도 아니고 나를 대신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번 달 원고가 펑크나게 생겼다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미안해. 다시 연락할게.”
전화가 끊겼다.
아카리는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뒤로 돌아 조금 전 빠져나온 시부야역으로 향했다. 의식적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클럽이나 바에 갈 용기도 없었다.
문득 얼마 전 TV에서 본 디저트 가게가 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모양도 귀엽고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파는 가게였다.
아카리는 시부야역 맞은편에 있는 그 케이크 가게에 가 보기로 했다.
역 앞 스크램블 교차로를 건너기 위해 그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아카리의 기분은 아까와는 달리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윽고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어 아카리는 걸음을 내디뎠다.
수많은 인파가 일제히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가운데 문득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안경을 쓴 젊은 남자였다. 기분 탓인지 남자가 갑자기 아카리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았다.
남자는 아카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어깨에 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카리는 남자가 손에 쥔 물체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도끼…?
“우아악!”
주위의 소음을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크게 괴성을 지르며 남자가 이쪽으로 돌진해 왔다.
남자가 도끼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아카리는 반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다음 순간 오른쪽 뺨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가방이 땅에 떨어졌다.
아카리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주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등 한복판이 뜨거워지더니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몸을 가누지 못해 앞으로 쓰러진 후에도 계속해서 가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계를 넘은 고통에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가운데 멀리서 “죽어! 죽어!” 하고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죽는 걸까….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이런 데서 죽고 싶지 않아….
코헤이… 살려 줘….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것만 같았다. 시야가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멈춰!”
어디선가 제지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카리의 몸에서 무언가가 쑥 하고 뽑혔다.
그와 동시에 대량의 액체가 몸 밖으로 흘러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픔을 참으며 떨리는 손을 뻗자 손가락 끝에 따뜻한 액체가 닿았다.
멀리서 남자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서 아카리의 눈앞에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경을 쓰지 않은 것을 보니 아까 본 도끼를 든 남자는 아니었다. 나이도 이쪽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남자는 한쪽 뺨을 길바닥에 댄 상태로 아카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굴에 핏기가 없고 입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걸까.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왠지 지금 남자가 하는 말을 반드시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아카리는 고통을 참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앞으로 기어가 남자의 입가에 귀를 갖다 댔다.
약속은 지켰다고… 전해 줘….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내뱉었다.
남자의 모습이 조금씩 흐릿해져갔다.
잠깐만… 기다려요… 가면 안 돼….
아카리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곧 캄캄한 암흑이 찾아왔다.